"생명이 피어나는 마음속 봄을 누리기를 희망한다"
2년 전 가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아버지 의 몸에 암이 발견돼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해야 하 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수도 없이 암 환자들을 대하는 나에게도 이 상황은 마음에 큰 돌이 얹어진 듯한 무거움과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절박감 에 울고 싶은 심정이 되어버렸다.
암세포가 머리 깊숙한 기저부까지 침범해 골 조직을 파괴하는 상태로 만약 조금만 늦었다면 아주 위중한 상 황에 이를 정도였다. 80대 중반이셨지만 건장하셨던 아 버지는 항암치료가 지속되면서 어느새 머리카락은 모두 빠졌고, 다리근육은 힘없이 부들부들 연약해져 한 걸음 을 떼기도 어려운 전신 상태가 되어가고 있었다. 게다가 항암치료 중 폐렴이란 합병증으로 위험한 고비를 맞기도 하셨지만 다행히도 아버지는 암과의 힘겨운 사투를 묵묵 히 견뎌내셨다.
마음을 졸이며 아버지의 투병을 지켜보는 가족 모두 의 겨울은 그 여느 겨울보다 더 추웠다. 따스한 봄을 기다 리는 동안 아버지는 수차례의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 를 무사히 이겨내며 우리 가족에게 훈훈한 봄바람을 선 물해주셨다.
지금의 시간은 덤으로 얻은 시간으로 여겨지고 긴 어 두운 터널을 통과한 아버지가 더 할 수 없이 감사했다. 아 버지와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어서 좋고, 날씨 같은 사소한 대화를 나누는 이전에는 몰랐던 이런 일상들이 행복이란 것을 절실히 알게 되었다.
폐암 말기의 한 할아버지가 떠오른다. 할아버지는 폐 암이 기관지를 꽉 막으면서 나타난 폐쇄성 폐렴으로 매 우 심한 기침과 호흡곤란으로 힘들어하셨다. 이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 폐암 덩어리의 크기를 감소시키는 방사선 치료가 시행됐다. 할아버지는 가쁜 숨으로 가만히 있기 도 힘드셨을 텐데도 치료 내내 밝은 미소를 잃지 않으셨 으며, 늘 할아버지와 동행하셨던 할머니 또한 여유와 밝 음이 넘치는 모습이셨다.
대기실에서 두 분은 서로 손을 꼭 잡으며 계신 밝은 모 습을 보며 얼마 남지 않은 이승의 삶과 호흡곤란이란 고 통스러운 상황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남은 시간을 가족 들과 따스하게 보낼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 또한 하느님의 도우심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겨우내 죽은 것처럼 보이는 마른 가지 속에서 여린 연 초록 잎을 밀어내는 봄의 기적처럼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통과 시련 속에서 인내하고 극복하여 생명이 피어나는 마음속의 봄을 누리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