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은 그분이 약 처방에 대해 재차 확인을 하고, 진료실을 나가기 전에 뭔가를 나에게 내미셨다.
'괜찮은 거니?'라는 제목의 얇은 한 권의 시집이었다.
그분은 약속된 시간에 맞춰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진료실에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한 달 동안 잘 지내셨어요?" 이젠 얼굴만 봐도 상태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지만, 그래도 늘 두근거리는 진료실에서의 첫 대화다. 그분도 "안녕하세요, 선생님! 예, 잘 지냈어요"라고 인사를 건네며 지난 1개월 동안 기록한 신장이식 수첩을 내미신다. 마치 숙제를 제출하는 초등학생처럼 말이다. 수첩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한 혈압, 매일 두세 번씩 측정한 혈당치, 운동량 그리고 소변의 횟수와 시간별 양까지 한 달 동안의 기록이 꼼꼼하게 적혀 있다. 뿐만 아니라 '음식은 무엇을 얼마만큼 먹었고, 하루에 평지는 몇 킬로미터를 걸었고, 조금 경사진 등산로는 얼마만큼을 걸었다'는 것까지 적혀 있다. 학교 숙제였다면 백 점짜리다.
사실 하루의 소변량을 기록하고 그에 따라 수분 섭취량을 조절하는 일은 신장이식 수술을 받은 분들이 많이 힘겨워하는 일이다. 때문에 신장이식 수술을 받은 대부분의 환자들은 수술 후 3개월이 지나면 신장이식 수첩관리에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분은 신장이식 수술을 받은 지 2년이 다 되어 가지만, 여전히 자기관리와 수첩 기록을 철저하게 하신다. 그 덕분에 주치의인 나는 피 검사 수치와 신장이식 수첩만 확인하면 쉽게 다음 달 약 처방을 내릴 수 있다. 그분을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게 되는 이유는 신장이식 수첩 때문만은 아니다. 그분은 신장이식 수술 다음날 갑자기 뇌졸중이 발생했던 환자다. 수술 집도의로서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던 순간이다. 다행히 약물 치료 등으로 힘든 고비를 잘 넘기고 무사히 회복했고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고 있다.
어느 날은 그분이 약 처방에 대해 재차 확인을 하고, 진료실을 나가기 전에 뭔가를 나에게 내미셨다. '괜찮은 거니?'라는 제목의 얇은 한 권의 시집이었다. 환자분이 나가시고 찬찬히 책을 넘겨보니 '들내'라는 필명으로 그분이 직접 쓰신 시집이었다. 특이하게도 각각의 시에는 제목이 적혀 있지 않았다. 읽는 사람의 느낌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 시인의 배려로 생각됐다. 시집을 읽는 내내 그 분의 너무나 잘 정리된 신장이식 수첩이 자꾸 겹쳐서 생각이 났다. 제목 없는 시를 읽는 동안 나는 그분과 나의 환자들에게 묻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