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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생각

살며 사랑하며


모든 일에 앞-뒷면이 있듯이 한 직업에서 오래 일하는 것도 장단점이 있다. 아직은 오래지 않은 삶을 살면서 우리 삶이 여러 상황과 관계를 겪으며 마치 거친 바다에서 항로를 따라 홀로 항해하는 배와 같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게 된다. 평온한 바다와 컴컴한 폭풍우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것과 비슷하다.

<위플래쉬>라는 영화를 본 적 있다. 뉴욕의 재즈 명문 학교에 입학한 소심하지만 자존심 강한 젊은 앤드류의 시선을 따라 영화가 시작한다. 앤드류는 극적으로 재즈 스튜디오 밴드 지휘자인 카리스마 넘치는 플랫처 교수에게 드러머로 발탁된다. 그는 선택받은 자가 느끼는 찰나의 희열, 피 튀는 날 선 경쟁, 좌절, 기만 등 정신적이나 육체적으로 극한의 위플래쉬(whiplash, 채찍질)를 겪으며 철저히 고독한 독선 덩어리가 되어간다.

재즈 천재 드러머로 인정받고 싶었던 앤드류, 그리고 그를 선택하고 시험하면서 처절한 극한의 고통을 맛보게 한 플랫처 교수는 얼마 후 서로에 대한 애증을 숨긴 채 사제 간이 아닌 한 사람의 드러머로 또 지휘자로 무대에 선다. 그들은 부딪히지만, 결국은 음악에 대한 무한한 열정과 사랑, 그리고 서로에 대한 존경으로 만들어진 멋진 앙상블을 보여주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병원에서 의사로 삶을 보낸 지 20년을 향해가는 지금, 앤드류가 음악을 통해 느낀 희열과 순간마다 마주하는 긴장은 어딘지 내 삶과 닮아있었다. 영화 속 음악은 마치 긴 시간 사치스런 정찬을 받는 듯 풍성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사제 간에서 벌어진 성장이 나의 삶에도 있었던 듯했고, 앤드류였던 내가 어느 사이 플랫처 교수가 되어있는 듯해 데자뷰 같은 공감을 전율하듯 느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삶을 사는 우리는 눈앞에 주어진 일과 사명 속에서 그 끝은 알지 못한채 성공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다. 과한 경쟁과 무섭게 휘몰아치는 환경 속에서 희열과 좌절, 기만과 배신, 희생과 가학적 소용돌이에 흔들리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덧 얻은 것과 잃은 것의 중간 즈음에서 멍하니 서있다.

누군가의 위로나 칭찬을 기대할 나이가 훌쩍 지났음에도 은근히 그것을 갈망하던 ‘애어른’의 삶에 <위플래쉬>는 차갑지만 든든한 위로 한마디를 던진다. ‘순수한 열정과 사랑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성장시킨다.’라고.

40대 중반의 나이, 의사로서 뿐만 아니라 사회나 가정, 학교에서 요구되는 책임감들 속에서 내 삶을 이끌어가는 것은 결국 순수한 열정과 사랑이다. 안정적인 삶에 안주하지 않고, 치열한 경쟁에서도 배려할 수 있고, 스스로에게도 또한 사랑하는 이들에게도 적절한 ‘위플래쉬’를 할 수 있도록 이끄는 힘은 결국 사랑이 아닐까?

삶을 살아나가며 배우는 입장에 있는 누구에게나, 특히 플랫처 교수 같은 스승을 두었던 이들에게 스승에 대한 불완전한 이해와 불안한 동경도 그들의 순수한 열정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게 하는 힘, 사랑이 맞다.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신장내과 장윤경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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