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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생각

잘 먹고 잘사는 법


그림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는 채소(채식)를 고집하다가 점점 나무(거식-拒食)로 변해간다는 이야기다.
주인공 영혜가 개에게 다리를 물어 뜯기자 아버지는 개를 죽여 가족과 나눠먹는다. 이때의 트라우마 때문에 잠을 잘 수도, 먹을 수조차 없다.
육식을 거부하면서 남편과의 사랑도 거부한다. 이런 딸에게 부모는 억지로 고기를 먹인다. "아버지, 저는 고기를 안 먹어요." 영혜는 최후의 저항으로 자신의 손목을 그어버린다. 그리고 외친다.
"이젠 브래지어를 하지 않아도 덩어리가 느껴져. 아무리 길게 숨을 내쉬어도 가슴이 시원하지 않아. 어떤 고함이 울부짖음이 겹겹이 뭉쳐져 있어. 고기 때문이야. 고기를 너무 많이 먹었어. 그 목숨들이 고스란히 그 자리에 걸려 있는 거야."
그녀가 아파한 것은 '손목'이 아니라 '가슴'이었다.
음식은 입보다 오감으로 먼저 느낀다
이제 먹고사는 건 생존의 문제가 아니다. 살기 위해 먹지 않고 먹기위해 산다. 아무거나 먹지 않고 골라서 먹는다. 때문에 입이 먼저 먹지않고 눈이 먼저 먹는다. 오감(五感)이 먼저 드시는 것이다. 눈이 만족해야 침이 돌고, 귀를 압도해야 코가 즐겁다. 눈의 망막, 귀의 달팽이관, 코의 비점막, 혀의 미뢰, 피부의 촉각까지도 맛을 느낀다.
가령 '두루치기'를 상상해보라. 조갯살과 낙지를 잘게 썰어 넣고 콩나물, 버섯, 박고지 등을 함께 볶아 한소끔 끓여낸 음식. 청량함과 동시에 침이 돈다. 그래서 요리에도 법칙이 있다. 머리 박고 후루룩 먹어야 제 맛인 매생이, 아무것도 넣지 않고 끓여야 일품인 대구탕, 된장과빵을 곁들여야 맛있는 병어, 칼을 대면 맛이 떨어지는 전복 등등. 그야말로 음식은 '뭐가 중헌디'가 아니라 '그 무언가가' 중요해졌다 .
음식은 그 시절의 추억이고 기억이다
아내가 차린 식탁은 '채소밭'이다. 상추 잎과 된장, 김치, 깍두기,가지무침, 양배추 절임, 브로콜리 샐러리, 아스파라거스, 쑥갓, 머위등등…. 물론 '삼식이(三食·퇴직 후 집에서 하루 세 끼를 꼬박 챙겨먹는 중·노년층 남성)'라서가 아니다. 원래 입이 짧다. 육류를 즐기지 않고 회도 좋아하지 않는다. 오로지 한국 전통식 백반에 꽂힌다.
특히 돼지고기 요리를 싫어한다. 어릴 적 트라우마 때문이다. 넉넉하지 않았던 형편 탓에 아버지는 종종 정육점에서 돼지비계를 공짜로 얻어다 먹이곤 했다. "김씨, 우리 집 강아지에게 먹이려고 하는데 비계나 좀 주시오"라는 슬픈 단서가 붙었다. 그러나 실제 먹는 주체는 '개'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비지(두부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도마찬가지였다. 지금은 대단한 영양식이 됐지만 그때 그 당시엔 돼지사료로 주던 음식이다. 그때부터 이상하게 고기 음식이 싫어졌다.차라리 푸성귀가 나았다. 그렇다고 아버지를 원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돼지비계와 비지는 그냥 '슬픔'이었다. 고기를 사주지 못해대체재를 먹였을 뿐이고, 고기를 사주지 못하니 '밭의 고기'라도 먹였던 것이다. 그 눈물을 알기에 육류는 싫어하되 아버지는 싫어하지않는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 걱정을 많이 했다. 아이들이 내 입을 닮아 육류를 거부할까봐. 그런데 아이들은 '육식파'다. 밥상에 고기류가없으면 손을 아예 안 댄다. 최소한 햄이라도 부쳐야 먹는다. 육식과채식의 절묘한 접점에서 힘의 균형이 맞춰지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채소든 고기든 우리의 결정은 '잘 먹고 잘사는 것'에 있다.
상대방의 밥을 걱정해주는 마음, 잘 먹고 잘 살자
늘 먹는 식사지만 한 끼라도 놓치면 하늘까지 살짝 노래지는 게 보통 사람의 몸이다. 건강하게 먹자. 아니 잘 먹고 잘살자. 소식(小食)도 좋고 소식(素食)도 좋지만 웃으며 편히 먹는 소식(笑食)이 중요하다. 한때 밥 빨리 먹는 걸 자랑으로 여겼지만 그건 섭취가 아니라 사육이었다. 말라깽이가 대접받는 세상은 쥐어짜서 맞춘 폭력일 수도있다. 몸은 지배의 대상이 아니라 존중받아야 할 대상이다.
"식사하셨어요? " "식사하셨어요? "
먹고 살기 힘들었을 때의 인사가 아직도 존대의 문법(文法)이다.먹고 살만해졌는데도 먹는 걸 최우선으로 묻는다. 아직도 배고픈 것인가. 아니면 배고픈 기억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 것인가. 밥 정도는먹고 살지만, 상대방의 밥을 걱정해주는 것이니 나쁠 것은 없다. 그만큼 '밥'이 '법'이다. 가끔은 생각한다. 집에서 한 끼도 안 먹는 이른바 '영식님'이 아니니 행복하다고. 이 세상 남편들이 '웬수'라는 소리까지 들으면서 밥한 끼에 절절매는 게 슬프다. 이사 갈 때(자신을 버리고 갈까봐) 아내가 사랑하는 애완견을 꼭 안고 있다는 얘기는 또 뭔가. 식구(食口)는 한집에서 같이 살며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한자에도 '커다란 입·口)'을 그려놓지 않았는가. 아내들이여,이번 주말 아침 거실을 한 번 둘러보라. 소파에 껌딱지처럼 눌어붙어TV 채널만 돌리고 있는 '웬수'가 지금까지 가족들의 입(口)을 위해 밥벌이를 했던 가장이었다. 라면도 가끔 한 번씩 먹어야 맛있지, 자주먹으면 물린다.
"잘 먹고 잘살자."
충청투데이 나재필 편집부국장·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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