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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성모병원 플러스] 한겨울에 만나는 붉은 매화


붓 끝에서 피어난 꽃, 희망을 이야기하다 - 조희룡의 <붉은 매화(紅梅)>

우리는 아직 한겨울 속에 살고 있다. 옛 그림의 기준으로 본다면 눈과 얼음의 계절, 희망의 아이콘은 단연 매화일 것이다. 현대과학의 발달로 일기예보가 만연하기 훨씬 이전부터 매화를 봄을 알리는 첫 신호로 여겼다. 찬바람이 설렁거리는 이른 봄, 제일 먼저 꽃을 피우는 매화는 옛 선비들의 지조나 충성으로 은유되기도 했다. 추운 겨울이라는 힘든 시기(정치적 탄압이나 등용 받지 못한 설움 등)가 지나가면, 반드시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는 당찬 희망을 매화에 투영했던 것이다. 당연한 결과겠지만 풍전등화 같던 조선의 옛 선비들은 매화를 지극히 사랑했다

그들 중 조선후기 화가 조희룡(趙熙龍, 1789~1866)의 매화사랑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그는 자신의 거처를 '매화백영루(梅花百詠樓)'라 불렀던 인물이었다. 저서인 『석우망년록(石友忘年錄)』에 '매화 병풍을 방 안에 펼치고 앉아, 매화 벼루에 매화먹을 갈아서 매화 시를 쓰고, 그러다 목이 마르면 매화차를 끓여 먹는다'는 지독한 매화 편애를 기록한 매화광이기도 했다.

여기 휘날리는 매화꽃이 매혹적인 그림을 보자. 형식은 두 폭이지만 함께 있어야만 제 멋이 나는 쌍폭 그림이다. 늙은 홍매화 두 그루가 이리 꺾이고 저리 꺾이고, 서로 뒤엉키며 하늘로 뻗치듯 구불거린다. 매화를 사랑한 화가 조희룡의 걸작 <붉은 매화>다. 그림에 문외한이라도 그림을 관통하는 빠른 속도감과 힘찬 에너지를 아마 느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예술적 격정에 휩쓸려 단숨에 붓질하는 그의 모습이 변화무쌍한 그림과 오버랩되어 보이지는 않는가?

조선에서 매화 그림은 간결함과 절제만이 미덕이었다. 그러나 조선후기가 되면서 조희룡의 경우처럼 매화도는 점차 커지고 화려해 진다. 뿐만 아니라 분홍빛의 붉은 매화 즉, 홍매화가 그림에 빈번히 등장한다. 붉은색은 나쁜 기운을 물리친다는 토속적인 속 뜻을 담고 있다. 그래서일까. 흰색 일색이었던 조선의 매화그림에 붉은색 매화가 당당히 자리 잡게 된 것이. 조선후기는 나라 안팎이 여러 이유로 위협받았던 어지러운 시기였으니 말이다

조희룡의 붉은 매화꽃은 마치 팝콘을 뿌린 것 마냥 풍성하다. 흩날리듯이 즉흥적으로 그렸지만, 매화 한 송이 한 송이에 표정이 살아 있는 듯 생기가 넘친다. 무릇 매화를 그릴 때는 사실적인 묘사보다 즉흥적인 느낌에 취해야 제 맛이 나는 법이다. 매화 나무와 꽃은 이렇게 거칠게 표현해도 멋있지만, 매화꽃을 간단한 선이나 물감으로 콕콕 찍어서 표현하는 방법도 재미있다

매화그림은 보통 조희룡의 경우처럼 매화만 단독으로 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때론 조속(趙涑, 1595~1668)의 <고매서작(古梅瑞鵲)>이나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매조서정(梅鳥抒情)>처럼 까치, 참새 등의 새를 매화와 함께그려 소재를 다양하게 구성하기도 했다.

눈 밝은 사람은 벌써 눈치 챘겠지만, 이 그림은 현대적 감각과 절단의 구도를 통해 아름다움을 연출한 작품이다. 부분 사진을 찍듯이 나무의 위아래 부분을 모두 잘라내고, 가운데 부분만 확장해 회화적 감성을 살렸다. 그는 매화가 상징하는 희망을 극대화하기 위해, 나무 기둥을 클로즈업하여 표현하는 극단적인 방식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조희룡이 <붉은 매화>를 그렸을 때는 예순의 나이에 전라도 영광 임자도로 유배를 떠났을 때였다. 그는 한겨울 바닷바람이 남긴 살을 파고드는 추위와 외로움을 견뎌내기 위해 그토록 애정했던 매화 그리기에 매달렸다. 그러나 추운 처지와는 다르게 <붉은 매화>는 활기 있고 에너지가 충천하다. 왜일까? 어쩌면 이 매화 그림은 자신을 버린 세상을 향해 '나 잘 살고 있다!' 는 조희룡의 호기로운 외침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지금은 비록 황량하지만, 다가올 새로운 세상은 분출하듯 역동적인 매화처럼 찬란하기를 바란다는 암시적 은유인지도….

세월은 역행하지 않는다. 그가 꿈꾼 세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세상은 바뀌었다.

그리고 매화 피는 설레는 봄이 다시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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