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투병 생활에서 의사도, 환자도 자기 자신을 믿고, 또 서로를 믿으며, 반드시 회복하겠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어느 날 수술을 마치고 늦은 시간에 회진을 돌고 있는데 중년 여자분이 외과 병동 휴게실에서 날 아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계셨다. 옆에는 남편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환자복을 입고 함께 앉아 계셨다. 보호자는 낯이 익은 듯 했으나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예정된 응급 수술 시간이 촉박해 서둘러 회진을 마쳐야 했고, 잠시 잊고 지내던 중 며칠 뒤 병동에서 보호자 한 분이 날 잠시 보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며칠 전 그 여자분이었고, 남편이 3년 전 나에게 수술을 받고 한 달가량 입원 치료받은 적이 있다며, 반가워서 안부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씀하셨다. 그제야 환자에 대한 기억이 났다.
3년 전 마르고 왜소했던 모습과는 달리 몰라보게 체중도 늘고 건강해 보였다. 환자는 당시 지속적인 복통과 구토로 응급실을 찾았고, 장유착으로 인해 입으로는 물조차 마실 수 없는 상태였다.
30여 년 전 위절제술을 받은 이후 수술 부위 협착의 합병증과 장유착으로 인해 4차례나 수술을 이미 받았었다. 장유착은 수술 이후 장이 배 안에서 서로 들러붙고 이로 인해 장내 음식물 이동이 어려워지며, 심해지면 입으로 물이나 음식을 먹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탈수와 영양실조로 환자의 전신 상태는 급격히 나빠지며, 장은 막힘증으로 인해 계속 부풀어 오르고 피가 통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괴사가 일어날 수 있다.
이미 이전에 4차례나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이번 수술을 결정하는 데는 많은 고민이 있었고, 오랜 시간 동안 환자는 제대로 먹지 못했기 때문에 영양실조로 인해 수술후 좋은 결과를 장담하기 힘들었다.
수술하는 외과 의사로서 수술 결과에 대한 확신 없이 수술을 결정하고 이를 환자와 보호자에게 설명하는 것은 매우 두렵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환자 본인은 물론 부인께서 전적으로 믿고 치료를 맡겨 주셔서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수술 후 초반에는 극심한 영양실조와 이로 인한 근육 손실로 환자는 누워만 있어야 했고, 회복을 장담하기 어려웠다.
심지어 거의 움직이지 못해 발생한 광범위한 욕창과 이로 인한 이차 감염, 게다가 폐렴까지 발생하면서 위험한 상황을 보호자에게 설명하면서 치료를 이어 나갔다. 한 달가량의 집중적인 영양 치료와 재활을 병행하면서 침대에 누워서 일어날 수 없던 환자가 비소로 휠체어를 탈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어 퇴원할 수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입원 치료 중에 환자와 환자의 부인은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항상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퇴원 후에도 꾸준히 재활하며 영양 치료와 더불어 재활 치료를 받으면서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외과 의사로서 환자를 치료하면서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경우가 종종 있다. 게다가 전신 상태가 좋지 못한 환자의 경우 치료 방법의 선택이 매우 제한적이며, 환자에게 필요한 최선의 방법을 선택할 수 없게 되기도 한다
이럴 때는 최악의 결과를 피하는 선택만이 남게 되고, 이 때문에 결정을 주저하게 되는 어려운 상황을 만나기 도 한다.
환자를 치료하면서 어려운 결정으로 어깨가 무거워지는 순간 나는 나 자신을 믿고 결정을 내릴 뿐만 아니라, 환자의 생명력과 회복력을 믿고 치료에 임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의사가 환자를 낫게 한다고 생각하지만,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외과 의사로서 위중한 환자가 힘든 고비를 넘기고 회복해 건강해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환자의 생명력과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느낀다.
